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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따라 길 따라

[뫼오름스케치] 신령스러운 암봉 희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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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양산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 걸쳐 있는 산

괴산과 문경의 일대의 산을 돌아보면 대부분 암릉 군과 기암들로 이루어진 험산준령의 산들이 많이 있다. 그중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산이 있다면 바로 희양산이다. 울퉁불퉁 하나의 거대한 흰 골격의 암릉으로 희양산은 신비감에 호기심을 더한다. 기묘한 암릉의 형상은 해골, 철모 등으로 표현할 정도로 상상을 유발하니 재미있는 산이다. 괴물 같은 저 산을 과연 어떻게 오를까 늘 질문 하지만 그곳에도 길이 있다는 사실 또한 놀랍기만 하다. 백두대간을 하면서 정상이 살짝 비켜나 있어 힘겨워 희양산 정상을 지나쳐 버린 山, 오늘 그 산을 여유롭게 오를까 한다.

희양산 曦·陽·山

희양산(曦陽山)은 높이는 해발 999m이며 동·서·남 3면이 화강암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돌산이다.암봉들이 마치 열두 판 꽃잎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중심에 자리한 봉암사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일 년에 딱 한번 석가탄신일에만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봉암사. 봉암사에는 국보급 문화재와 여러 사찰 보물이 보존돼 있다. 햇빛 희 와 볕 양을 쓰는 희양산이 이름이 어떻게 지어젔는지 궁금하여 살펴보니 「봉암사는 통일신라 말 헌강왕 대인 879년에 지증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 선종 계통의 종파인 구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문의 종찰로 참선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선도량으로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희양산의 이름은 불교 종파에 연루함을 추측해 본다.

문헌에 의하면 예로부터 희양산은 도적이 들끓고 한말(韓末)에는 의적의 본거지 였다고 한다. 희양산이 얼마나 산세가 험한 오지임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산행 제1코스 : 은티마을-지름티재-갈림 -정상-성터-폭포-갈림길-은티마을 약 8km ±

코로나 이후로 전국의 대간 산객이 급격히 줄었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이곳 역시 접근이 여의치 않아 주로 산악회 버스로 찾아오나 발길이 뚝 끊긴 상태다. 백두대간뿐만 아니라 악휘봉, 마분봉등 주변 명산들이 모여 있는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은티마을. 마을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주차장은 반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차비는 아직 받지 않고 있다.

은티마을 주차장

언제나처럼 명품 소나무 군락이 마을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는다. 보호수로 지정돼있다.

은티마을은 풍수지리학상 자궁혈 형상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음기가 지나치게 세어 소나무를 심어 음기를 막았고 해마다 동고제를 통하여 남근석을 세우고 제를 지내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풍습이 안내돼있다.

마을의 유래가 적힌 빗돌과 장승.그리고 남근석

주차장을 벗어나면 마을 입구에 대간꾼의 집으로 알려진 주막집. 오가는 산객에게 출출함을 달래주는 곳이다.

은티마을에서 은티재 들머리는 마을을 통과해서 많이들 알바들을 하곤 한다. 주막집 다리를 건너며 코스를 살피고 갈 필요가 있다. 은티재, 마분봉을 가기 위해서는 주막집을 지나 우측으로 호리재골이나 희양산을 가기 위해서는 좌측으로 진입해야 한다. 희양산 이정표를 따라가면

시루봉과 지름티재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우측으로 빠진다.

지름티재는 ↗ 우측 길

집보다 더 큰 바위가 집마당에 있고 한쪽으로는 멍멍이 집으로 쓰이고 있다. 뒤로는 구왕봉의 모습이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1km 이상 걸어야 한다.

은티산장

과수원이 있는 도로를 따라 들머리까지 이동한다. 문경과 괴산 쪽은 사과의 산지로도 유명하지요.

물탱크가 있는 곳이 들머리이고 우측은 호리 골재로 올라 구왕봉을 오를 수 있다. 희양산 ↖ 3.6km 구왕봉 ↗ 3.0km

계곡을 끼고 오름길은 서서히 고도를 올리며 지름티재 까지 이어진다. 유월의 숲은 초록으로 더 짙어져만 간다.

성터와 갈라지는 첫 갈림길이다. 자칫 부주의하면 뜻하지 않게 성터로 올라야 하니 주의해야 한다. 우측 계단 따라 산악회 리본이 많이 붙어 있다.

↗ 지름티재 방향

조금 오르면 성터 방향 이정표. 사실 저 이정표는 윗 사진의 갈림길에 세워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하산은 성터로 내려 올 예정이다.

지름티재에 도착한다. 변함없는 봉암사의 높은 벽은 성벽과도 같다. 울타리 넘어는 출입을 금하는 초소가 있지만 인적은 없었다. 문화재 관리와 자연훼손을 이유로 통제한다지만 일반인의 입장을 통제해 유별나게 신성시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출입을 막는 전국의 사찰 중 유일한 것 같다. 어쨌든 봉암사는 일 년에 딱 한번 석가탄신일에 개방을 하고 그 외에 희양산은 문경 쪽은 오를 수 없고 연풍면 은티마을을 통해야 오를 수 있다. 오른쪽은 구왕봉의 진입로이고 정상이 0.5km 라 적혀있으나 세미 릿지 구간으로 급하기가 수직에 가까워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지름티재

울창한 숲과 나뭇잎에 가려 구왕봉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운없이 등산로에서 뿌리를 내려 척박하기 그지없어 가엽구나

이 길을 오르는 산객은 힘겨워 너에게 의지를 하며 올라가는구나

너에게도 다음 생이 있다면 양지바른 곳 좋은 곳에서 명품 송으로 다시 태어나거라

조망터에서 구왕봉

고도를 급격히 높이면서 서서히 희양산의 진 면목이 들어 나기 시작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약 100 미터 가량 대롱대롱 허둥댄다.

암반 아래로 수맥이 흐르는지 바위 표면으로 물이 젖어 미끄럽다. 안전로프가 있지만 자칫 방심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며 한 사람씩 오르니 시간 역시 많이 지체된다.

마지막 구간을 통과하면 시루봉과 희양산 갈림길을 만남 이후로는 등산로가 부드러워진다. 정상까지 400 미터

이윽고 시원한 조망이 터지고 희양산서 바라보는 주변의 멋진 풍경이다. 좌측으로 청화산 속리산 문장대로 이어지고 구왕봉 뒤로 우측부터 막장봉 장성봉 대야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구왕봉을 당겨본 풍경

기암
석간송

희양산 정상에서 성터로 하산을 시작한다.

봉암사의 경계 울타리가 길게 성터까지 늘어져 있다.

봉암사 경내에는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보물 137)과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보물 138),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보물 171),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보물 172), 봉암사 삼층석탑(보물 169), 함허당득통지탑, 환적당지경지탑, 상봉대선사비, 노주석, 백운대, 마애불좌상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희양산성 이 산성은 신라와 후백제가 국경을 다투던 접전
지로 929년(경순왕 3)에 쌓은 성터이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해발 928미터의 희양산성. 그 옛날 험준한 산세를 올라 이 고지를 뺏으려는 자의 전투가 쉽지 않아 보인다.

성터 은티마을 갈림길

급한 계곡의 하산 길을 따라가면 어느덧 숲 속 아래에서 물소리가 들리고 산행이 종료가 가까워 온다.

맑은 계곡에서 땀을 식혀간다. 수량은 많지는 않지만 얼음물처럼 차갑다.

비록 뜨거운 태양에 아스팔트의 복사열이 얼굴에 와닿지만 들꽃 따라 마을까지 이동하는 길이 나쁘지 않다.

뒤돌아 보니 구왕봉이 내려보고 있고

마을 한쪽 담에 쓰인 현수막의 글이 가슴에 박힌다.

「바람처럼 살고 싶다면 삶의 무게를 줄여라」

좋은 말이긴 하다. 그런데 사실 운명처럼 수레바퀴에 갇혀 살아온게 보통 사람들 삶의 일부가 아닐까? 바람 따라 구름처럼 살아보는건 마음뿐이지 실제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살아볼까

네 잎 클로버를 찾는다고 들길을 쏘다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누이 따라 들에 나가 풀꽃반지 만들어 손가락에 끼고 다니던 어린 시절... 그런 시절도 있었지 반백년도 더 된 희미한 기억의 소환, 어느새 이렇게 세월이 흘렀을까?

마을 길 따라 잠시나마 들꽃여행의 시간을 가지다 보니 주막집에 도착한다.

모질게도 질긴 생명력을 가진 망초... 화해라는 꽃말을 가진 망초는 구한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경술국치의 해에 전국에 퍼졌다 해서 개망초라 부르게 되었다고들 한다. 사실인지는 몰라도 여름날 물가 빈터에 하얗게 피어나면 마치 눈꽃이 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번식력이 강한 식물이다.

무더운 날씨에 습도까지 있었던 휴일의 산행이었습니다. 짧은 산행 희양산 암릉 산행이 되었습니다.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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